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국뷔] 사랑은 오키나와에서처럼 07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타는 한국인 정국과 일본인 뷔의 이야기

Our Night

매일 지새우던 우리의 우주







정국과 뷔의 옥상 댄스(?)가 있고 얼마 안 지난 날의 밤이었다. 오늘은 손님도 없고 옆에서 정국도 거들어줘 일이 한결 수월했고 일찍 끝났다. 일찍 끝났다고 해봐야 새벽 두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말이다.

둘은 종종 옥상에서 맞닥뜨리곤 했는데, 오키나와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뜨끈하게 몸을 지지며 가끔 끽연을 하기도 하는 뷔였고,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몸을 풀 듯 춤을 추기도 하는 정국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자기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화려하고 유쾌한 분위기로 만들어 버리는 정국이었으나, 정작 모두의 앞에서 댄스 장기자랑을 펼치려 들진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춤을 춘다는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저렇게 잘 추는데 왜 숨기려 들까. 아, 그냥 말을 안 할 뿐인가. 조금은 의아한 뷔였지만 그냥 뭔가 이유가 있으려니- 하며 궁금증을 얕게 묻어두었다. 혼자서 하는 눈호강이 사치스럽다 여겨질 정도였지만 그냥 즐기자 싶은 뷔였다. 아, 아름다운 피사체여라.


"고마워, 덕분에 일찍 끝났네."

"도이따시마시떼(천만에요)~. 나도 여기 즐겁고 좋아서 하는데 뭐."

"그치? 나도. 재밌어.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눈 마주치고. 감정 나누고. 술 취하면 다들 더 솔직해져서는."


옥상바 한 구석에 자리한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와 하나는 정국에게 건네고 나머지 하나를 들고 바 테이블에 걸터 앉는 뷔. 챡-! 소리가 나게 캔을 뜯어 벌컥벌컥 마시며 정국은 뷔의 말에 끄덕인다. 원래 지붕이 있던 자리에는 화재로 목조 자재만 성기게 남아있을 뿐이었지만 흉물스럽지 않고 오히려 운치있는 것은 오키나와의 낭만적인 공기 때문일까.

뷔가 앉은 테이블 앞 의자ㅡ라고 해봤자 빈병 수거용 플라스틱 상자였지만ㅡ에 궁둥이를 붙이고 저도 앉아 밤하늘을 바라본다. 나하는 나름 대도시이지만 별이 참 잘 보인다. 뷔도 정국의 시선을 따라 같이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뭐가 생각이 났는지, "아!" 한다.


"쿠쿠, 옥상 위에 옥상이 하나 더 있는 거 알아?"

"뭐? 어디."

"일루 와 볼래? 맥주 들고 와도 괜찮아."


뷔는 약간 들뜬 듯 정국을 지나쳐 성큼성큼 걸어간다. 바의 뒤쪽 벽면의 또 뒤쪽에 위치한 잡동사니ㅡ욕조부터 시작해 커다란 페인트통 몇 개, 그 밖의 정말 쓰레기처럼 잡다한ㅡ사이를 잘 보니 꽤 커다란 세월을 품은 나무 사다리가 있다. 그것도 그냥 덩그러니 서있는 게 아니라 아예 옥상의 옥상으로 올라가는 벽면 쪽으로 기대어져 있었다. 정국도 뷔를 따라 들뜨기 시작했다.


"조심해. 방심하면 바로 땅바닥으로 떨어져."


뷔는 몇 번 올라와본 듯 익숙하게 성큼성큼 먼저 올라가 정국에게 손을 내밀며 겁을 준다. 에이, 붓싼 싸나이가 이 정도로 쫄겠나~ 싶어 뒤를 돌아보자 정말 자신의 뒤쪽으로 난간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작은 아시아는 5층 정도의 낮은 건물이었지만 그래도 여기서 떨어지면 즉사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약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정국. 그렇기에 자신에게 내밀어진 뷔의 손을 덥썩 잡았다. 뷔는 요령 좋게 정국을 끌어당겨 옥상의 옥상으로 정국을 인도했다.

2평 남짓 될까. 옥상의 옥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난간도, 파라솔도, 의자도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여기에 올라오는 사람들의 기쁨이나 이야기나 별빛만으로도 넉넉히 채워지는 느낌이라 그럴 지도 몰랐다. 높은 건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경험은 한국에서도 무수히 해서 별 감흥도 못 느끼던 정국이었으나, 이번엔 좀 달랐다. 정국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낮에는 하늘과 바다가 데칼코마니를 이뤄 푸르고 파랬다면, 밤에는 하늘의 별과 땅의 가로등 빛이 데칼코마니를 이뤄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와..."


도시의 옥상이란 건 똑같은데, 왜 제가 살던 곳과 이 곳은 다른 느낌이 날까. 제가 여행자라서 그럴까? 여기 사는 사람들은 여기에 올라와도 내가 살던 곳에서 느끼던 것과 똑같이 느끼겠지. 왜인지 모르겠지만 정국은 해방감을 느꼈다. 속세의 세세한 걱정들을 잔뜩 모아놓고 기르며 정성껏 먹이를 주던 정국의 머릿속이 일순 정지되고 신선한 공기가 지나가는 듯 했다. 정국이 그렇게 멀리 허공을 바라보며 넋을 유영시키고 있는 동안 뷔는 정국을 바라봤다. 꼭 저가 여기 처음 올라왔을 때처럼 군다. 너도 참 상념이 많은가 보다.

그런 정국을 가만 내버려 두고 뷔는 정국의 뒤로 가 드러누웠다. 별 참 총총거린다. 한 동안 넋을 빼고 있다가 뒤에서 사부작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가 된 정국은 자신의 뒤로 맨 바닥에 편하게도 누워있는 뷔를 발견하고는 픽 웃으며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마, 쥑이네."

"죽이지? 그럴 줄 알았어."

"...?! 너 한국말 배웠냐?"

"배우긴 뭘 배워, 발음하는 것도 겁내 어렵구만."

"근데 어떻게 알아듣고 대답을 해?!"

"그냥 왠지 그렇게 말할 것 같더라."

"무셔븐 놈."

"욕하지 마."

"...썅."

"또."

"...죄송해요."

"그래."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둘은 동시에 파핫- 웃음을 터뜨린다. 정국은 뷔의 옆에 제 몸도 눕혔다. 그리고 뷔를 향해 모로 누워 팔로 삼각형을 만들어 머리를 괸다.


"우리도 재밌는 거 할까?"

"재밌는 거? 뭐?"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눈 마주치고. 감정 나누고. 술 취해서 더 솔직해져' 볼까?"


아까 바를 정리하며 자기가 했던 말을 반복하며 정국이 저리 묻는다. 장성해 저보다 더 큰 키에 탄탄한 체격을 지닌 정국이 제 옆에 찰싹 누워 눈을 초롱초롱 반짝이는 꼴이 별로 징그럽지는 않다. 오히려 귀엽게 느껴질 뿐. 그래서 홀린 듯 흔쾌히 승낙하려던 뷔는, 잠시 짙게 깔려있는 어둠을 빌려 동공의 흔들림을 숨긴다. 그리곤 곧 태연하게 먼저 선수쳐 정국에게 묻는다.


"좋아. 그럼 쿠쿠, 너는-"

"먼저 선수치시겠다?"

"순서가 무슨 상관이야."

"오~ 나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가 보지?"

"아, 진짜. 하겠단 거야 말겠단 거야."

"에이 장난장난. 뭐가 궁금해?"

"쿠쿠."

"음."

"어쩌다 오키나와에 왔어?"






"증국이, 니 진짜 거 가면 우짤라 카노!"

"뭐가. 우야든동 되겠지."

"남고까지 나온 아가, 거 가고 싶나?"

"뭐 딱히 가고 싶은 데도 읎고. 집에서 거 가라 안 카나."

"하이고야 머스마, 그래가 가오도 읎이 가라 칸다고 쭐래쭐래 간다 캤나."

"디지고 싶나?"

"하- 캐도 야. 가라 칸다고 갈 수 있는 것도 복이다. 난 뭐 성적이 안 돼가 **예대에 지원이나 해보겠나 싶다."

"잘났다, 새끼야. 니 그 카기 전에 딱 일 년만이라도 책 좀 들따 보지 캤노."

"디지고 싶나? 내가 안 봤겠나?"


아씨, 실기는 잘 볼 자신 있는데. 예술가한테 왜 공부까지 강요하고 지랄이고!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안 그래도 처진 눈고리를 잔뜩 내려가며 한숨을 폭폭 쉬는 지민을 바라보며 픽 웃는 정국.

낙엽이 다 떨어진 입시의 막바지에 들어선 정국과 지민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둘은 중학교 때 같은 반이 되어 처음 만나 쭉 함께 지냈다. 알고 보니 둘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이 달랐을 뿐이어서 항상 등하교도 같이 하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진학한 학교가 달라 예전보다 함께 있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도 주말마다 만나곤 했다. 성격도 잘 맞고 개그코드도 잘 맞고 음식 취향도 잘 맞아 늘 붙어 다닌 둘이었는데, 지민이 부산의 한 댄스 동아리에 다니며 춤을 추는 것을 알게 되자 정국도 한 번씩 거기에 발을 들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러다 '춤 한 번 춰 보지 않을래'라는 권유도 받고, 정국 본인도 춤 한 번 춰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 지민과 같은 동아리까지 드나들기 시작했다.

정국은 꽤나 춤에 재능이 있는 듯 했다. 습득 시간도 빨랐고 이해력도 좋아서 동아리에 들어 춤을 춘 지 2년이 지난 후에는 흡수하는 족족 제 스타일로 표현해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댄스 동아리를 다닌 지민도 놀랄 정도였다. 하얀 얼굴과 호리호리한 몸으로 땀방울 흩뿌려가며 춤을 추는 정국을 보고는, 부산의 아리따운 가스나들 몇몇이 가슴께를 부여잡고 호흡곤란을 일으켰다는 소문도 돌기 시작했다. 정국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강당 무대 위에서 독무를 추며 졸업생들의 졸업을 축하하는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딱히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본격적으로 춤의 길을 걷고 싶다고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취미로만.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나서였는지도 모른다. 저보다 춤을 훨씬 잘 추고 날고 기는 사람들이 천지 삐까리인데, 부산 촌놈이 동네 동아리에서 춤 좀 춰 봤자 누가 알아주겠냐는 마음이 커서. 도전도 해 보지 않고 아직 솜털이 잔뜩 붙어있는 날개를 도로 접은 것이 아니었을까. 계속 가슴 한 켠에는 비겁함에 기인한 자신에 대한 부채감이 자리하고 있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결국 팽그르르 돌아가며 자신을 찔러대는 삼각형 모양을 한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 입시로 눈을 돌렸다. 지민은 바라던 예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현대무용을 전공하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춤을 배우며 힘들어 하는, 하지만 새롭게 반짝이기 시작한 지민을 본 정국은 그 때부터 춤 동아리를 더욱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 이 갑갑한 부채감을 빨리 청산하고픈 마음에.



시간은 흘러흘러 둘은 사이 좋게 부산의 공대, 예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서울에 있는 예대에 가기 위해 상경하고 싶었던 지민은 크게 실망했지만 그만큼 더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댄스 관련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 오디션도 본 것 같았다. 예선 오디션 편이 방송된 이 후 지민은 자신만의 독특하고 아름다운 춤선과 오묘한 마스크로 '부산 망개떡남'이라는 별명으로, 출연한 댄스 프로그램의 태그를 달고 SNS에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자신의 친구가 테레비에 나오자 신기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등을 한 번씩 툭툭 치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학 오면 좀 덜 할 줄 알았더니. 더 답답하네.


예상대로 공대는 자신의 적성에도 맞지 않았고, 흥미도 붙지 않았다. 정국도 지민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아예 군대를 가서 2년 동안 생각을 좀 하고 올까?


2학년이 되기 전 2월, 그렇게 정국은 머리를 식히고 자신의 장래와 똑바로 마주보기 위해 입대를 하게 된다.





정국의 과거가 다음 편까지 이어집니다.



케이크상자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2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