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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사랑은 오키나와에서처럼 04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타는 한국인 정국과 일본인 뷔의 이야기


High five

ハイタッチ




이번 화는 영상(BGM)과 함께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 영상 오른쪽클릭 하면 연속 재생도 가능



"니혼슈(일본술) 한 잔 더요. 록으로."

"하-이. 200엔임당."

"저는 우메슈(매실주) 한 잔 더 부탁해요."


오늘도 작은 아시아의 옥상은 옥상바(Rooftop Bar)를 찾는 몇몇의 손님들 때문에 영업개시를 했다. 옥상바의 바텐더 뷔는 작은 아시아의 체크인이 다 끝나는 시간인 밤 11시가 되면 저를 찾는 손님들과 함께 옥상으로 향한다. 이제 곧 5월이면 장마도 시작되니, 천막이 없는 작은 아시아의 옥상 환경 때문에 장마철엔 영업을 못 한다. 그러니 지금 부지런히 해 둬야 소소한 용돈벌이 정도는 하지.

게스트 하우스마다 다르겠지만, 일단 이 작은 아시아에서는 스태프로 일한다고 해서 급료를 받지는 않는다. 대신 숙식제공이 되는 게 개이득이지. 방값 안 들지, 식비 안 들지, 공과금도 안 내도 돼. 대신 개인 방은 없고 손님들도 함께 묵는 침실의 침대 한 칸이 제가 가진 유일한 개인 공간이다. 공동 생활이 안 맞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낼 수 없는 곳이랄까. 뭐, 그래도 시끌복작하니 외롭지는 않아서 좋다.


제가 교토에서 오키나와로 이주해 와 작은 아시아에서 스태프로 먹고 자고 한 것도 언 1년 4개월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에 있는 대학을 지원했지만 떨어져, 그냥 대학은 포기하고 노가다, 카센터, 서빙 등 종목 가리지 않고 일하다가 식당 주방에서 보조로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요리는 좀 자신 있는 편이다. 잡다한 생활비가들지 않아 좋긴 하지만, 그래도 돈은 벌어 한 사람 몫을 해야 했기에 작은 아시아 근처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다가 얼마 전 식당이 망해버려 지금은 잠시 백수생활 중이다. 

수입이 없으니 작은 아시아의 옥상바 바텐더를 자청했다. 바텐더는 게스트들이 내는 술값이 곧 제 수입이었기 때문. 별로 기대하지 않고 한 일이었지만, 구멍가게 수준의 옥상 바텐더라는 직업은 꽤 흥미로웠다. 그냥 스태프로 있을 때보다 게스트들과의 교류가 더 많았고, 술기운이 오른 그네들의 속내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즐거웠다. 모두들 밤이 되면 더 솔직하고 진솔해졌다. 동시에 흥이 올라 낮보다 더 뜨겁기도 했다.

애초에 잠시 머물고 떠나려 했던 이 곳에서 1년이 넘는 시간을 발 붙이고 보낼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교토에서 지낸 26년(일본나이)보다 여기서 지내며 맺게 된 인연들의 수가 더 많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 인연들 중엔 외국인도 종종 있었는데, 제 영어 실력이 짧아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술 몇 잔과 담배 몇 모금과 바디 랭귀지면 안 되는 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들과 깊은 속사정까지 털어놓을 수는 없어 줄곧 아쉽긴 했다.


"나는 진토닉 한 잔, 태형아!"

"태횽아? 뷔쨩이 왜 태횽아야, 쿠쿠?"

"그런 게 이써~ 우리만의 비밀이야, 그치 태형아?"

"그냥 술이나 잡수세요?"


근데 처음으로 일본어를 겁나 짱 잘하는 외국인 정국과 만나게 됐고, 그들은 국적이 다른 것에 대한 별 다른 이질감을 못 느끼며 바다의 습기가 바람에 스며들어 오키나와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하듯 그렇게 서서히 친해져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정국은 뷔를 태형아로 부르기 시작한 후부터 매일 밤 뷔의 옥상바에 출첵을 하기 시작했다. 정국은 이전 자신이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 결가(結家)의 저녁 쉐어파티 분위기와는 또 다른 작은 아시아의 옥상바를 사랑하게 됐다. 결가의 그것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눅진하며 낭만적이었다. 작은 하우스에서 친해진 여러 게스트들과 뷔가 만들어주는 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띄우던 정국은 가끔 뷔를 도와 바텐더를 자처하기도 했다. 뷔는 그런 정국이 싫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자신을 부르는 태형아라는 호칭엔 적응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헤이, 바텐더상! 여기 바퀴벌레 한 쌍 생기려는 거 같은데 선곡 좋은 걸로 뽑아줘요!"

"오오오오오~~~"

"우우우우우~~~~"

"오늘부터 1일~~~~?!"


안 그래도 아까부터 계속 한 구석에서 둘만의 세계에 갇혀있는 게스트가 있었지. 옥상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다 호감도 피우게 됐나 보다. 수줍어하는 여성과 자신도 부끄럽지만 그래도 매우 상기돼 보이는 남성이 다른 게스트들의 부러움+놀림 섞인 환호를 받으며 하지 말라고 앙탈을 부려댄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 아닌 걸 모두가 알기 때문에 한 명도 그만두는 이는 없었다.

어느 새 뷔의 옆에서 자신 몫의 얼음을 컵에 집어 넣던 정국이 나서며 자신의 폰의 블루투스를 켠다.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걸걸하면서도 로맨틱한 그의 목소리로 스피커를 거쳐 흘러나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장난끼 가득한 쇼미와 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를 끈적하게 껴안으며 브루스를 추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깔깔거리며 환호했고, 수줍은 두 커플은 차마 춤은 추지는 못했지만 러브샷을 하며 뜨거운 열기에 부채질을 했다.


분위기에 취한 정국도 컵을 내려 놓고는 제 바로 옆에 서있는 뷔의 허리에 두 손을 감고 자기 쪽으로 끌어 당긴다. 정국의 즉흥적 행동에 나름 익숙해진 뷔는ㅡ술도 좀 들어갔겠다ㅡ당황하지 않고 눈을 끈적하게 풀고는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며 입술을 깨문다. 자리 뒤쪽으로 엉겨붙어 (난리)브루스를 추는 두 명의 땅땅한 근육맨보다 훨씬 구미가 당기고 눈이 호강하는 두 바텐더의 모습에 옥상바에 자리한 모든 사람들이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호응한다.

항상 정국의 스킨십에 쩔쩔매며 거부하던 평소의 뷔가 아닌지라, 정국 역시 평소보다 흥이 더한다. 사실 뷔 역시 정국의 '한국적인' 스킨십이 좀 어색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 역시도 사람을 서스럼없이 대하고 뻔뻔한 편이었다. 이 여세를 이어 뷔는 자신의 허리께에 자리한 정국의 손목부터 어깨까지 손으로 쓸어올리며 두 팔을 정국의 목 뒤로 교차해 얽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정국을 보며 눈을 약간 내리깔고는 킥킥 웃었다.


"올, 할 땐 하는데?"

"내가 좀."

"좋다. 맘에 든다, 우리 태형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신선한 뷔의 행동에 정국이 태형의 귓가에 대고 슬며시 읊조린다. 마지막 말은 또 태형으로 장식하는 정국이었지만, 이제 뷔는 좀 익숙해진 듯 신경도 안 쓴다. What a wonderful world가 끝날 때까지 둘은 끈적하게 달라붙어 몸을 좌우로 리듬타듯 흔들었고, 구경꾼들의 함성도 그런 그들의 불장난을 따라서 커졌다. 급기야 두 사람의 이마가 맞붙었을 땐 주민신고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아우성이 일어났다.

그렇게 대조적인 두 쌍의 아닌 밤 중의 (난리)브루스에 작은 아시아의 옥상바는 오늘도 성황리에 막을 내리는 듯 했다. 꽤나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총총 박혀있는 별도 이들을 보며 웃는 듯 짤랑짤랑 반짝인다.






"아~따 오늘도 날씨 겁내 좋네."

"쿠쿠?"

"어마 깜짝이야!!!"

"...뭐래는 거야."


오키나와의 하늘은 뭐랄까, 청명하다라는 말로는 이루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색과 빛으로 이뤄져 있다. 맑고 투명? 음... 겁내 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죽죽, 아 이건 아냐... 그래 좋아, 에메랄드빛 바다와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캬하, 즌증국이 이 어휘력 함 보소 쥑이준다 아임니꺼~

아무도 인정 못할 자화자찬을 속으로만 해대며, 항상 보는데도 볼 때마다 감탄하게 하는 오키나와의 하늘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몸을 지지는 그 맛을 또 느끼기 위해 정국은 오늘도 옥상으로 올랐다. 쇼미가 점심 타임 당번이고 신은 친구와 놀러를 나가 오늘은 정국 혼자였다.


그럼 오늘은 오랜만에 몸도 좀 풀어볼까?


라고 생각하며 한 손으로는 뷔의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고 한 손으로는 옥상 문을 열어젖혔다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들려오는 뷔의 목소리에 애 떨어질 뻔 했다. 뷔는 옥상바의 테이블 위에 앉아 까리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국은 뷔의 앞 의자에 궁둥이를 붙였다.


"내 스피커는 왜 들고 왔냐."

"음."

"이 자식이 말도 안 하고."

"비싼 거야?"

"방수도 돼."

"대박."

"노래 들으려고?"

"음... 그것보다는-"


에라, 모르겠다. 뭐 어때.


스피커를 들고 정국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옥상 한 가운데로 갔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 부서진 나무 기둥도 널부러져 있고 한 쪽에는 게스트들이 널어놓은 빨래도 휘날리고 있다. 하지만 정국은 개의치 않는 듯 그것들을 발로 슥슥 밀어 치우며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한다. 뷔는 담배를 끄고 가만히 앉아 정국이 하는 양을 지켜본다. 정국은 스피커를 켜고 자신의 폰으로 노래를 연결한다. 랜덤으로 재생되는 노래를 들으며 정국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듯 했다.

쟤가 뭐 하려고 저러지? 의아한 뷔였지만 곧 의문은 사라지고 정국의 몸짓을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Sigrid - High five


에 맞춰 정국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몸으로 노래하는 듯 정국은 비트 위를 미끄러지며 밟았고 리듬과 하이 파이브를 한다. 새털같이 가벼운가 하면 어느 순간 묵직하게 내려 찍고,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듯 하더니 장난스럽게 돌변하며 노래를 가지고 논다. 립싱크를 하며 표정도 자유자재로 바꾸는데, 그런 정국에 뷔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전율을 느꼈다. 와, 저 새끼... 겁나 잘 춘다.

노래 중간에 정국은 뷔를 응시하며 가까이 오라 손짓한다. 나? 뷔는 갑작스런 정국의 부름에 당혹스러워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지만, 이미 정국에게 압도된 나머지 거부할 생각도 못하고 쭈뼛쭈뼛 그에게 다가간다. 뷔가 가까이 오자 정국은 


"맡겨."


한 마디 툭 뱉고는 뷔의 주위를 돌며 춤을 춘다.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맡기라는 자세한 설명도 없었지만, 정국이 만들어낸 그 시공간 한 복판으로 들어와버린 뷔는 정국의 말대로 그저 '맡긴 채' 살짝살짝 몸을 흔들며 리듬을 타 본다. 정국은 그런 뷔를 보며 환하게 웃더니 뷔의 움직임에 어울리며 아름다운 점 선 면을 만들며 공간을 채운다. 

역시 음악은 만국공용언어라는 말이 맞긴 한가보다. 둘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귀로 들어오는 선율을 느끼며 눈으로 서로를 응시하며 몸을 움직인다. 뭔진 모르겠는데 소름이 돋고 통(通)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틈틈이 척추를 관통하는 전율에 기분 좋은 흥분감이 고양된다. 작은 아시아에 온 후부터 가슴 깊숙이 묻어놓고 덮어놓은 어떤 감정이 자신을 덮은 먼지들을 치우려는 듯 작게 태동한다.

하지만 이 순간 뷔는 알아채지 못했고, 그저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기에 심장이 빨리 뛰는 거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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