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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사랑은 오키나와에서처럼 03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타는 한국인 정국과 일본인 뷔의 이야기


君の名は。

너의 이름은







"쿠쿠!!!!! 침구 세팅 다 끝냈냐? 옥상 가자!"

"야, 물 한 번만 끼얹고 가자. 땀 뻘뻘이다. 무슨 오키나와는 4월인데 이렇게 더워?"

"옥상에서 끼얹어도 돼. 니 알몸 아무도 안 봐."

"이 좌아식이 형님을 뭘로 보고."

"나이도 어린 게 어딜 감히 대-들어, 대-들긴? '쇼미형님' 해 봐, 쟈식아."

"아이고~ 한 살 많은 것도 형이라고, 옛다 이거나 먹어라."

"Fuck you very very much 데스네~~"


정국이 나하의 게스트 하우스 '작은 아시아'에서 스태프로 일하게 된 지도 언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정국까지 합쳐 작은 아시아의 스태프 수는 총 8명이나 됐다. 점장인 '손쨩(そんちゃん)'과 작은 아시아에서만 4년을 지내며 스태프를 하고 있는 불혹을 넘긴 '네-상(ねえさん)', 네상의 콤비 서른 중반의 '노리삐(ノリピー)', 매일 오키나와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선탠을 하는 '쇼미(しょうみ)'와 파릇파릇한 21살, 쇼미와 함께 몸을 태우는 '신(しん)', 수줍음 잘 타는ㅡ곧 불혹을 맞이하는ㅡ빡빡이 요리사 '아라키(あらき)', 작은 아시아의 얼굴 담당 '뷔(ブイ)', 그리고 최근 합세한 유일한 한국인 정국 '쿠쿠(くく)'까지.

(별로 중요하진 않지만 정리해보자면 : 손쨩, 네상, 노리삐, 쇼미, 신, 아라키, 뷔, 정국)


연령은 20대 초반부터 40대 초반까지 다양했고, 하지만 손쨩과 네상을 제외하고는 전부 남자였기에 작은 아시아는 항상 그 활기도 우렁찼다. 여장부 스타일의 손쨩은 항상 "제발 여자 스태프가 새로 들어왔음 좋겠다"고 말하며 눈물 짜는 시늉을 하지만, 짐승같은 시꺼먼 남자애들과 젤 잘 어울려 노는 것 역시 손쨩이었다. 거기다 활력 하면 또 정국을 빼놓으면 섭했기에, 정국은 작은 아시아에 오자마자 원래 스태프였던 양 스태프들과 그 공간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니, 전보다 오히려 더 정신없고 시끄러워진 것 같았다. 하지만 4월이지만 곧 여름을 맞이할 오키나와에서 문제될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 했다.

3, 40대의 연상팀은 그렇게까지 에너지 넘치지는 못했으나 20대의 젊은 피들은 정말이지 말릴 수가 없었다. 원체 한국에 있을 때에도 몸 관리를 꾸준히 해왔던 정국이었기에, 여기서 만난 쇼미, 신과는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정국보다 키는 10cm 이상 작은 주제에 온 몸에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강력한 자외선으로 지진 그들의 구릿빛 피부는 몸 하면 자신 있던 정국을 좀 긴장타게 했고, 그 때부터 정국은 쇼미와 신의 '작은 아시아 옥상 선탠' 동지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에서 26년을 하얀 눈밭의 토끼새끼마냥 새하얗게 지내온 정국이 오키나와 온 지 두 달 여만에 캬라멜 빛으로 변해가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야, 아침 당번들 나랑 교대하고 가야지, 이것들아!"

"열쇠 스태프룸 컴퓨터 앞에 놔뒀어, 뷔쨩! 돈 계산도 쿠쿠랑 내가 했으니까 오케이다~"

"진짜? 개이득. 니들 옥상 가지? 최대한 늦게 내려와라~ 내 귀 좀 쉬게."

"그냥 너도 올라 와, 차피 요즘 손님도 안 오는데. 오늘 체크인도 세 팀밖에 안 될걸?"

"진짜? 개개이득."

"좀 이따 올라와!"

"어어- 바이바이."


하지만 바로 여기 활기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이는 20대도 존재했으니. 그렇다. 바로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국보다 나이가 두 살 많은 28살의 뷔였다. 그들과 어울려 놀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만사에 좀 심드렁하고 귀찮고 무심해 보이는 면이 있어 혈기 왕성한 그들에 비해 온도차가 좀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글끼 넘치는 세 명의 20대들은 그런 뷔를 가만 두지를 않았다. 원래 좀 괴롭히면 앙탈부리고 하지 말라고 팩팩대는 여자애들을, 남자애들은 더 괴롭히고 싶고 뭐 그런 원리였지 뭐... 하지만 앙탈이라 하기에는 좀 어폐가 있었다. 세 명의 비글에 비해 좀 호리호리해 보인다는 거지, 그냥 일반적 기준을 놓고 보면 꽤 건장한 편에 속하는 뷔의 발길질과 방언권 출신 특유의 걸걸한 욕설 또한 작은 아시아의 활기에 열기를 더하곤 했으니까.


쿠당탕쿠당탕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오르며 뷔를 영업하는 쇼미를 향해 어김없이 심드렁하게 대꾸해준 뷔는 목에 열쇠를 걸고 접수대이자 스태프룸의 문을 닫고는 로비를 지나 거실로 향했다. 세 명의 비글이 전부 사라진, 햇살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시간의 텅 빈 거실.

4월은 일본의 학교가 새학기를 맞이하거나 개강을 하는 시기이기에 제일 손님이 없는 시즌이었다. 뷔는 거실 한 켠에 자리한 낡아빠져 가운데가 푹 꺼져버린 소파 팔걸이에 목을 대고 누웠다. 크게 뚫려있는 창문을 꽉 채운 너무나 푸르고 투명한 하늘을, 천천히 미끄러지는 새하얀 구름을 본다.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하지만 곧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현(絃) 튕기는 소리에 살포시 눈을 뜨며 소리의 출처를 좇는다.


"어, 쿠쿠. 아직 안 갔어?"

"너무 더워서 샤워 잠깐 했어."

"안 올라가? 쇼미랑 신 기다릴 텐데."

"올라갈랬는데, 니가 있는 이 풍경이 오늘은 쪼큼 더 마음에 든다."


온통 하늘색으로 칠해진 벽에 기대어 산신(三線) 줄을 튕겨대며 무심하게 툭 뱉는 정국이었다. 정국의 말대로 이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잘 생긴 뷔는 아주 사소한 몸짓이나 표정으로도 그 자리의 분위기나 느낌, 온도를 바꾸곤 하는 능력이 있었다. 샤워를 끝내고 나와 옥상으로 향하려던 정국의 발길을 잡은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의 게스트 하우스 안에 두 명의 남신은 없다며 자신감 뿜뿜하던 정국은, 작은 아시아 첫 날 덮쳐지듯 제 팔 안에 가둬진 뷔가 요란스런 손쨩의 등장에 닫혀진 눈을 뜨자마자 그의 남신미(...)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곧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주먹부터 날려오는 뷔의 명치 펀치에 뒤로 고꾸라지며 신고식을 제대로 치룬 쿠쿠라는 건 안 비밀.


"뭔 느끼한 작업멘트같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지껄인다, 너는."

"아마 외국어라서 그럴 걸."

"그게 상관이 있어?"

"모국어의 미세한 뉘앙스 차이가 감지되지 않는달까. 그래서 표현 자체가 덜 부끄러워. 어린애들이 솔직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해."

"으흠. 일리가 있다."

"뷔 너도 외국어 한 번 공부해 봤으면 내 맘을 잘 알 텐데."

"나는 사투리 안 쓰는 것도 힘들어서."

"어, 그건 인정."


우미노~ 코에가~ 키키타쿠테~ 얼마 전부터 뷔에게 배우고 있는 산신 연주곡을 정국이 흥얼거리며 어느새 뷔의 앞에 앉았다.


"오사카랬나?"

"아니, 교토."

"올, 교토~ 촌놈이네."

"교토가 촌이라는 놈이 더 촌놈이다."

"나도 부산 촌놈."

"아, 맞어. 일본어를 너무 잘 해서 순간순간 쿠쿠 니가 한국인이란 걸 까먹는다."

"도이따시마시떼(천만에요)~"


오홍홍홍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수줍은 척 입을 가린 정국이 경박스럽게 다른 한 손으로 뷔를 가볍게 챡챡 때렸다. 뷔가 썩은 표정을 지으며 누워있던 자세를 바꿔 앉으며 제 앞에 앉은 정국을 내려다 본다.


"너 한국 이름은 뭐야?"

"정국. 전정국."

"ㅈ, 죵구크? 아, 죵구쿠라서 별명이 쿠쿠야?"

"맞아쪄요~ 똘똘하네 우리, 아, 그러는 너는 이름이 뭐냐?"


우쭈쭈 표정을 지으며 뷔의 턱을 손가락으로 간질간질하는 모션을 취하던 정국도 뷔의 본명을 묻는다. 이런 한국적인 리액션에 아직 적응이 안 된 뷔가 정국의 손가락을 치워내며 대답한다.


"나? 토오루. 다이 토오루."

"토오루? 뭔가 매치가 안 되는데."

"왜?"

"음, 뭔가 한국인으로서 듣기에는... 니 얼굴에 비해 이름이 좀 귀여운 감이 있다."

"그래? 내 이름이라서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뷔의 마지막 말을 들은 정국이 잠깐 기다려 보라는 말을 남기곤 스태프룸으로 들어가 펜과 종이를 가져온다.


"니 이름 한자 한 번 써볼래?"

"디게 간단해. 원래 일본은 이름이 네 글자가 보통인데 나는 두 글자밖에 안 되거든."

"올, 개이득."

"?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정국이 내뱉은 한국어 감탄사에 가벼운 의문을 표한 뷔는 곧 정국이 들고온 종이에 제 이름자를 적었다. 泰亨. 정국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가볍게 주먹쥔 손을 턱에 갖다대며 고심하는 척 했다. ...처음 보는 한잔데? 뒷주머니에 꽂혀있던 폰을 켜며 초록창을 띄운 정국은 곧 일본어 사전에 손수 태형이 쓴 한자를 적어가며 한자의 음을 찾아 보았다. 앞에서 정국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던 뷔는 어느 새 흥미가 동했는지 정국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정국의 손 안의 작은 화면을 함께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태형."

"응?"

"니 한자, 한국어로 하니까 태형이다, 태형아."

"태횬? 에, 이게 더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아냐아냐, 뭔가 이게 더 착 감기는 거 같다, 태형아."

"뭘 말끝마다 태횽아를 붙이는 거야."

"좋았어! 오늘부터 너는 태형이다, 태형아!!!"

"뭐래, 그냥 옥상으로 꺼져."


태형으아!!!!! 부력의 원리라도 찾은 듯 손을 번쩍 들고 태형아를 외치던 정국이 옆에 앉아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태형ㅇ... 아 아니 뷔...ㅡ일단은 뷔가 태형이라는 이름을 어색해하니 뷔라고 불러주자ㅡ뷔를 장난스레, 하지만 있는 힘껏 꽉 껴안았다.

아니, 한국인들은 원래 이렇게 스킨십을 좋아하나? 정말 친하지 않는 이상 이런 동성끼리의 스킨십을 잘 하지 않는 28년 묵은 일본인 대표(?) 뷔로서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남자의 스킨쉽이 퍽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뷔는 정국을 떼어 놓으려 낑낑댔다. 하지만 작은 아시아에서 지낸 겨우 일주일 새, 질색팔색하는 여학생 괴롭히는 추억의 맛을 다시금 알아버린 정국은 그런 뷔에게 더욱 치댈 뿐이었다. 태형으아!!!!!!라 포효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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