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국뷔] 사랑은 오키나와에서처럼 02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타는 한국인 정국과 일본인 뷔의 이야기


Sometimes, someone...

그 언젠가, 그 누군가







"오~하요~ 뷔쨩!!! 오늘은 웬 일로 아침 당번이네."

"손쨩 오하요-. 타임 테이블은 맨날 손쨩이 만들면서 웬 일이라니."

"아, 뷔쨩 요즘 옥상바(Rooftop Bar)도 하는거 깜빡 했다! 어제도 옥상바 하지 않았어?"

"했지-. 아침 7시까지 달렸어. 정리하고 내려오니까 8시. 한 시간도 못 잤네."

"미안미안~ 앞으로 뷔쨩이 옥상바 계속 할 것 같으면 당번은 점심이나 저녁 타임이 좋겠지?"

"그래주면 고맙지."


흘러내리는 결 좋은 밤색 머리카락을 헤어밴드로 느슨하게 고정하고 한 손에는 수세미 한 손에는 칫솔을 들고 싱크대 청소를 하던 뷔의 등을 손쨩의 경쾌한 아침 인사가 두드린다. 나하의 게스트 하우스 '작은 아시아'의 점장 손쨩은 누가 보더라도 참 독특한 사람임에 분명했다. 정수리부터 빠글빠글하게 볶은 파마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브래지어도 하지 않는, 여자치고 온 몸에 털이 많은 편임에도 겨드랑이라든지 다리라든지 제모를 하지 않는 자연인(?).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속으로 약하게 기함을 했지만, 손쨩은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유쾌하고 아이같으면서도 동시에 어른스러운 다정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세 네살 정도 연상인 그런 손쨩을 뷔는 인간적으로 많이 좋아하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처음 이 작은 아시아에 왔을 때 정신적으로 많은 힘이 돼 주었던 것도 그녀였다.


뷔는 윙크를 하며 손쨩을 향해 싱크대 녹물이 다 녹아 내릴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손쨩은 심장께를 움켜쥐며 아침부터 잘생김으로 공격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과장된 리액션을 하고선 쿵쾅거리며 2층으로 내려가 작은 아시아의 아침을 깨운다. 오늘도 평화로운 작은 아시아를 느끼며 뷔는 몽롱한 가운데 열심히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스태프 하나 새로 온다던 거 같던데."


한국인이라 그랬던 건 기억이 나. 근데 여자였던가, 남자였던가... 흠. 몰라, 좀 이따 손쨩한테 물어보지 뭐. 잠시 신입 스태프에 대한 흥미와 궁금증이 조금 일었던 뷔는 깊이 생각하기 귀찮다는 듯 아침 청소를 위한 BGM을 틀며 다시 청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게스트 하우스 결가(結家)의 아침 무렵은 매우 바쁘다. 10시에 돌아갈 게스트들이 체크아웃을 끝내지만 전날 저녁쉐어파티에 참가한 대부분의 게스트들은 서로 사이가 매우 좋아지기 때문에 누군가 떠날 시간이 되면 다들 우루루 모여 배웅을 하고 함께 단체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어떤 때는 서럽게 울기도 하며 어떤 때는 담백하게, 또 어떤 때는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떠나보내기도 한다. 정국 역시 스태프 초반, 친해졌던 게스트들이 떠날 때에는 정말 많이 울곤 했다.

마, 갱상도 머슴아는 태어나가 딱 세 번 운다 아이가! 하지만 그의 주장대로였다면 결가에서 정국은 서른마흔다섯 번은 새로 태어나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데도 왜 그리도 마음 한 켠이 시리고 허전하던지. 오키나와 오기 전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온 친구들이나 동기들 지인들이 문득 생각나곤 했다. 하루 스치고 지나간 게스트들보다 더 의미있고 소중했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꽤 많이 무심하고 소홀했구나.


고작 한 달 새 수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 정국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은 정국이 바로 그 이별의 주인공(?)이 된다. 매일 배웅만 하던 입장에서 배웅을 받고 떠나는 처지가 된다니. 쵸큼 서글프군. 뭐,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으니 괜찮아! 라며, 코를 시큼거리며 센척을 하는 정국이었다.


"사진 한 방 찍을까?"

"좋지. 같이 찍자, 에이스."


오늘도 체크아웃을 떼거지로 한 게스트들 덕분에 텅 비어버린 결가에서 정국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창 밖으로 바다를 가만히 응시했다. 싱숭생숭해. 그 때 프로 사진작가이기도 한 에이스가 정국을 무심하게 어루만져 준다. 한 달 간 정국과 동고동락하며 의지가 많이 됐던 멋진 형, 에이스. 자기가 가르쳐 준 이상한 한국어로 한국 여자들에게 장난을 걸기도 하면서 참 많이 웃기도 하고, 타지 생활이 힘겨울 때가 있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조금 처져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진지하게 위로를 해주거나 가볍게 장난을 걸어 온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야. 정국은 정말 감사했다.


헤어질 때가 돼서일까. 이별이 가까워져 올 수록 결가에서의 모든 추억들이 점점 더 미화되기 시작한다. 정말 가기싫다. 너무나 친절하게도 나하까지 에이스가 차로 태워다 준댄다. 나키진에서 나하까지 두 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왕복 네 시간인데. 날 위해서 에이스... 큽, 정말 다정한 새끼야. 7살 형이지만.

유이네는 그 동안 본 적 없던 원피스를 입고 얼굴에 분칠도 하고 입술에 루즈도 발랐다. 비, 비주얼 쇼크... 정국은 생리적으로 구겨지는 미간을 애써 펴며 웃어 보였고, 유이네는 잔뜩 섭섭해하며 평소보다 몇 배는 높아져 콧소리를 더한 목소리로 정국을 배웅했다. 꼭 다시 오라며, 다음에 또 스태프 해도 좋다며. 네, 꼭 다시 올게요. (하지만 다음엔 손님으로 올게요...)라는 뒷말은 곱씹어 삼키면서 에이스가 운전할 차 조수석에 올라탔다.






나하에 도착해 뜨겁게 포옹한 후 둘은 헤어졌다. 에이스가 떠나는 차 뒷꽁지에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며 정국은 '작은 아시아'로 향했다. 사실 정국이 게스트 하우스 결가로 가기 전, 딱 하루 이 작은 아시아에서 묵은 적이 있었다. 결가는 나하에서부터 두 시간 가량 버스를 타고 가야 도착하기 때문에, 당일 비행도 있었으니ㅡ그래봤자 한국에서 오키나와까지 두 시간도 채 안 되지만ㅡ시간에 쫓기며 바로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에 하루는 나하에서 묵기로 정했었다.

그 때는 이 작은 아시아가 내가 머물게 될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었지.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 날은 너무 피곤해서 체크인을 하고 바로 침실에 틀어박혀 잠만 잤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그 '잘 생긴 스태프'를 만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작은 아시아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는 정국이었다.

낡은 5층 건물의 2, 3층이 작은 아시아 게스트 하우스로 쓰이고 있다. 2층 접수대로 끙차끙차 짐을 들고 올라간 정국은 레게풍 음악이 흘러나오는 거실과 로비의 한산하고 나른한 풍경에 저도 모르게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손님이 왔는데도 느껴지지 않는 인기척에 정국은 살짝 의아해하며 접수대 안쪽으로 기웃 고개를 들이밀었다.


"...!"


사람이 있었다. 군데군데 찢어진 다다미 바닥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헐. 뭐지? 구, 구급차를 불러야 할까? 자는 건가? 아니면 아파서 쓰러진 건가? 좀 더 자세히 보니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사람은 식은땀을 흘리는 듯 했다. 놀란 정국은 재빨리 접수대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고개를 모로 돌리고 더운 숨을 폭폭 내쉬며 누워 있었다. 온 몸이 땀 범벅이다. 이렇게 덥고 습한 오키나와에서 열사병은 잦게 일어난다. 처음 오키나와 왔을 때도 한국과 기후가 맞지 않아 신체적으로 매우 건장하고 건강한 편인데도 뙤약볕에서 몇 시간 동안 잔디를 한 번 깎고 나면 다음 날까지는 기운이 좀 없고 입맛도 없곤 했다. 저도 그럴진대 저보다 조금 더 체격이 호리호리해 보이는 이 남자도 이렇게 좁은 방에서 선풍기 하나 없이 있다가 쓰러진 게 분명해.

잘 알진 못하지만 어디서 보고 들은 건 있어 호흡과 맥박을 확인해 보려 남자의 몸 위로 몸을 약간 숙이며 목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어우, 뜨거. 진짜 아파서 쓰러졌나. 그런데 자신의 체온보다 정국의 손가락이 시원했던 탓일까, 모로 돌려져있던 남자의 고개가 바로 돌려져 정면을 향하더니 반대편으로 살짝 기운다. 그리고 무의식에 서늘한 정국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살짝 잡고 얼굴로 가져간다. 당황한 정국은 남자에게 이끌리는 대로 남자와 더 가까워지다가 그대로 굳었다. 남자가 만족스러운 듯 으으응... 소리를 내며 땀에 젖어 촉촉한 뺨을 정국의 손바닥에 문질러 온다. 


어... 어쩐담. 느낌이 이상해! 근데 이 손을 빼내기엔 남자가 너무나도 편안해 보인다. 정작 확인해 보려던 맥박은 확인해 보지도 못했다. 근데 이렇게 가까이 있으니 호흡은 느껴지는 것 같다. 보자, 좀만 더 가까이...


"뷔~~~쨩~~~ 교대 할 시간, -"

"...!"

"..."


용변을 본 손쨩이 멀리서부터 존재감을 과시하며 쿵쾅거리며 다가와 벌컥, 접수대이자 스태프룸 문을 열어 젖혔다. 웃는 얼굴로 굳어서 이 상황이 뭔지 파악하려는 작은 아시아의 점장 손쨩과, 소란스러움에 잠이 깨 아직 몽롱한 채로 살며시 눈을 뜬 뷔, 그리고 그런 뷔와 손쨩을 번갈아 바라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정국.


아, 클리셰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글쓴이였다.




케이크상자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