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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사랑은 오키나와에서처럼 01

오키나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썸타는 한국인 정국과 일본인 뷔의 이야기


涙そうそう。

눈물이 주륵주륵







"쿠쿠! 곧 8시인데 컵이랑 접시 아직도 덜 날랐니?"

"오늘은 저 저녁당번이잖아요! 그러니까 에이스보고 하라고 해요, 유이네~"

"에이스는 오늘 야스미(휴가)라 나하에 볼일보고 온다고 늦는다고 했는데..."

"에~이, 그럼 유이네가 좀 해요. 저 다 돼 가니까 곧 도울게요."

"알았어, 대신 빨리 하고 도와줘야 돼!"

"하~이! ...에이씨 진짜... 할매 지가 해도 될 걸 갖다가 꼭 나를 시켜 먹어요."

"이거이거, 또 한국어로 말하지? 또 내 욕했지?"


뜨끔. 이 할매가 그릇 나르랬더니 아직 안 가고 있었나. 정국은 두 벽면에 크게 뚫려있는 창문과 거의 헬기 프로펠러 소리와 맞먹는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벽면에 붙어있는 대형 선풍기에도 불구하고 부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저녁 쉐어파티(share party)를 위한 저녁거리를 만들고 있던 중이었다. 그 옆에서 유이네가 다 갈라진 걸걸한 목소리로ㅡ앞니빨 사이도 갈라졌다ㅡ발을 쿵쿵 굴리며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 반 더 위에 있는 정국을 밉지 않게 노려보고 있었다.

땀을 흘려서인지 안 그래도 하얗던 정국의 피부가 땀방울로 인해 더욱 하얗고 반짝여 보인다. 정국의 턱선을 타고 목선을 타고 마침내 쇄골에 고이고 마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마흔이 훌쩍 넘은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 '유이네'는 정국을 나무라듯 혀를 차는 척하며 침을 꿀꺽 삼킨다. 정국은 소름돋는 그 광경을 못 본 척하며 예의 그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할매'를 달랜다.


"에~이, , 아 아니 유이네. 오늘 나 스태프 마지막 날인데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자기 볼일 있다면서 놀러 나간 에이스 욕했지, 무슨 유이네 욕을 했다고 그래요. 내가 '에이스(에이씨)'라고 했지 언제 '유이네'라고 하던가요? 그죠?"

"흠. 알았어, 얼른 하고 도와줘! 오늘 게스트가 너무 많아서 혼자 감당하기 좀 힘드니까~"

"네, 알았어요. 나도 그릇에 담기만 하면 돼. 곧 갈게요."


손목 스냅을 이용해 후라이팬을 촥 감아올려 음식을 뒤집던 정국은 찬장을 열고 쟁반에 그릇과 컵을 수북이 담아 뛰어 나가는 유이네의 코끼리같은 발목을 보고 하얗던 미소를 싹 거뒀다. 그리고 소름이 돋는 듯 부르르 몸을 떤다. 아무리 잘.생.긴 남자가 자기 취향이라도 그렇지 그렇게 대놓고 그르냐... 으, 소름. 소오름.

정국은 여기 게스트 하우스의 점장인 '에이스'에게 배운 오키나와 요리ㅡ정국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ㅡ'고야 참푸르'를 도기로 된 누군가의 핸드 메이드 접시에 옮겨 담으며 질색을 한다. 부엌을 넘어서 거실에서는 이미 쉐어파티 준비를 끝낸 게스트들이 자신들의 요리를 테이블에 세팅하고 저마다의 수다 꽃을 피우고 있었다. 


와. 이 생활도 내일이면 끝인가?


고야 참푸르와 함께 자신 몫의 맥주 한 캔을 게스트 하우스 부엌 한 켠에 아담하게 자리한 자판기에서 뽑은 정국은 섬나라 특유의 눅눅하고도 끈끈한, 바다 내음이 물씬 물든 저녁 바람을 느끼며, 제가 한 달간 몸 담은 오키나와 북쪽 나키진의 작은 게스트 하우스, '결가(結家)'에서의 마지막 날을 즐기기 위해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이 가득한 거실로 향했다. 정국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간 그와 친해졌던 많은 게스트들과 결가 주변에 사는 이웃들이 환호를 하며 그를 맞는다.


이렇게 행복한 곳은 다시는 찾기 힘들겠지?


아직 그 무엇과도 헤어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진하게 달라붙어오는 그리움을 느끼며 오늘 쉐어파티의 주인공 정국은 큰 테이블 네 개를 이어붙인 잔치상 한 가운데에 궁둥이를 붙인다. 정국까지 착석하자 게스트 하우스 결가의 주인장 유이네가 갈라진 목소리를 크게 높이며 저녁파티의 시작을 알린다. 

게스트 하우스 '결가'만의 독특한 전통(?)이자 특색인 이 '쉐어파티'는, 결가에 머무르는 게스트와 스태프 전부가 저녁 8시마다 모여앉아 다 함께 자신들이 손수 만든 저녁요리를 나눠 먹으며 친목을 쌓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참가하지 않아도 좋고 외식을 해도 좋고 손님들의 의사와 자유를 존중하는 멋진 파티지만, 한 달 간 이 게스트 하우스의 스태프로 지냈던 정국은 매일 밤 열리는 이 저녁 잔치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

오키나와로 워킹 홀리데이를 오기 전 탑재한 십 여년 간의 덕력으로 일본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던 정국이었지만, 역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로는 절대 충족되지 않는 언어의 벽이 있게 마련이었다. 어찌 알았겠는가, 현지인은 화면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깨끗하고 정확하게 발음하지도 않고 사투리도 안 쓰지 않고 느리게 말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그 사실에 가벼운 충격을 받은 정국은 답지 않게 약간 주눅이 들었으나, 이 쉐어파티에서 매일 하는 '자기소개 타임' 덕분에 한 달 여만에 일본어 실력이 쑥쑥 늘게 됐다. 결가에는 한국인들도 많이 찾아왔기 때문에 자신은 이 저녁 파티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고급인력(?), 통역사였기 때문이다. 오늘도 테이블 한 구석은 다수의 한국인이 자리해 곁에 앉은 일본인들과 파파고며 손발이며 얼굴이며를 이용해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그들만의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의 유쾌한 붓싼 사나이 정국 역시 타고난 밝은 성격과 끼로 양국 사람들의 분위기를 띄우며 마지막이 될 밤을 보내고 있었다.


"쿠쿠상은 그럼 오늘 끝나면 다음은 어디로 가요?"

"아, 나하로 가요. 거기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스태프 한다고 했어요."

"와, 여기랑은 분위기 완전 다르겠다."

"네, 나하는 대도시니까. 여기는 무슨 한 시간을 걸어야 편의점 불빛을 볼 수 있는데, 그죠?"

"하하하, 네, 맞아요. 길도 얼마나 구불구불하고 음습한지. 여기 오는 사람들 절반은 길 잃고 헤매지 않아요?"

"맞아요. 언제 한 번은 밤 늦게 도착했는데 이 근처 무덤가에서 길 잃어서 울면서 전화한 게스트도 있었어요."

"까르르, 대박! 지인짜 무서웠겠다! 낮에 봐도 등줄기가 서늘하던데 밤에 무덤가라니, 싫다~"

"저는 거기서 울고 있는 그 게스트 분 보고 오금이 저리던데요."


정국은 맞은 편에 앉은 예쁘장한 일본인 게스트 하루와 가볍게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그 때의 기억이 생각났는지 몸을 가볍게 부르르 떨며 눈알을 살짝 위로 까뒤집고는 웃긴 얼굴을 했다.


"꺄하하하, 쿠쿠상 진짜 재밌다! 쿠쿠상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진짜 너무 싫다... 하루만 더 일찍 올 걸. 하루밖에 쿠쿠상이랑 같이 못 놀아서 너무너무 아쉬웠어요. 그래도 재밌었지만."


하루는 살짝 알딸딸함을 느끼며 오늘이 마지막인 정국을 아쉬워했다. 눈썹도 어깨도 약간 축 내리며 정국에게 시선을 준다. 여주인장으로서 다른 게스트들을 즐겁게 해주며 파티의 분위기를 주도해 가던 유이네는 하루의 이러한 달갑지 않은 낌새를 귀신같이 눈치채고는 젊은 선남선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유이네의 가늘어진 눈꼬리를 기민하게 느낀 정국은 무덤가에서 느낀 오금 저림을 다시금 느끼곤 헛기침을 큼큼 했다. 정국의 오늘이 아쉬워진 하루는 정국의 내일을 물었다.


"그럼 쿠쿠상이 머무는 다음 게스트 하우스 이름은 뭐예요?"

"'작은 아시아'요."

"작은 아시아... 어! 오늘 저 거기 체크아웃 하고 여기 온 건데."

"정말요?"

"네! 거기 숙박비가 싸잖아요. 아마 나하에서 제일 쌀 걸? 또 완전 시내 한 복판에 있고."

"와,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대화를 유연하게 끌어갈 줄 아는 정국은 '우연'이란 말을 툭 던져 하루로 하여금 그들만의 은근한 유대감을 느끼도록 했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그건 하루뿐만 아니라 유이네의 심기 역시도 간질간질하게 긁었다. 하지만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ㅡ정국에게만 집중한ㅡ하루는 살짝 부끄러운 듯이 웃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네, 정말. 우연이다아~ 아, 근데 거기 스태프 중에 진짜 잘 생긴 사람 있었어요."

"어, 진짜요? 저보다 잘 생겼어요?"

"까르르, 음~ 그런 거 같기두 하구, 아닌 거 같기두 하구?"

"이야, 이거이거 불타오르는데? 함 겨뤄봐야겠는데 이거? 하늘 아래, 아니 한 게스트 하우스 안에 두 명의 남신은 없다!"

"뭐래~ 쿠쿠상 진짜 못말린다아~"

"아마 나보단 못할 거야~"


정국은 손을 펴 얼굴 앞에서 위아래로 흔들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뻔뻔하게 말했다. 그에 하루는 또 한 번 꺄르르 웃었고, 정국도 따라 웃었다. 이제 유이네는 아예 정국과 하루 쪽으로 몸을 틀고 "뭐가 그리 재밌을까~ 나한테도 알려줘~"라며 입꼬리가 바르르 떨리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 앉아 이 분위기 좋은 선남선녀의 대화에 궁둥이를 들이밀려 한다. 정국은 못 들은 척 잽싸게 방어를 하며 하루에게 되묻는다.


"근데 하루상, 그 잘 생겼다던 스태프 이름이 뭐였어요?"

"뷔라고 하던데요. 별명이지만요. 쿠쿠상처럼."

"뷔요? 특이한 별명이네."


정국은 자신의 다음 거처인 작은 아시아의 잘 생긴 녀석의 이름을 가볍게 되뇌었다. 그리고는 곧 요란하게 등장한 에이스의 서프라이즈 송별식에,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갱상도 사나이답지 않게 퐁퐁 눈물을 뿜었다.

자신이 이 낯선 곳에서 마음 놓을 수 있게 해준 든든한 친구이자 형 에이스에 대한 고마움과, 벌써부터 저를 잠식해오는 이 곳에 대한 그리움과,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간 많은 인연들과의 반짝이는 시간들이 갑자기 너무 소중하게 따뜻하게 다가온 때문이다. 그런 정국의 눈물과는 역설적으로 파티의 분위기는 더 달아올랐지만 말이다.


바다를 지척에 둔 이 사랑스러운 게스트 하우스를 눅눅한 바닷바람이 다정하게 감싸며 유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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